신용회복경험담
42세 여성, 부모님을 부양하며 다시 일어서는 길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9.01 16:30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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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했던 일상
저는 42세, 편의점 점장으로 일하고 있는 여성입니다. 미혼이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왔습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일하며 큰 욕심 없이 소소한 행복을 느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성실히 일하면 부모님 생활을 책임지고 제 삶도 꾸려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빚’이라는 단어가 제 인생과 이토록 가까워질 줄은 몰랐습니다.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모든 것은 이혼 과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짧지 않은 연애 끝에 결혼했지만, 결국 성격 차이와 생활 문제로 갈라서게 되었고, 예상치 못한 재산 분할과 위자료 문제가 닥쳤습니다. 위자료와 재산 분할금으로만 약 7천 8백만 원이 필요했는데, 가진 저축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은행 두 곳에서 대출을 받고, 부족한 생활비는 카드로 돌려 막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열심히 일하면 금방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모님 병원비와 생활비까지 책임지다 보니 원리금 상환은 점점 버거워졌고,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더군요. 3년 6개월 동안 매달 빚을 갚아도 원금은 좀처럼 줄지 않았습니다. 그 무게가 제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개인회생 결심까지
결정적인 계기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입원이었습니다. 병원비와 약값을 마련하느라 카드 한도를 모두 채워버렸고, 연체 문자와 독촉 전화가 쉴 틈 없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 정말 다 잃겠다’는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히 망설였습니다. ‘내가 파산한 것도 아닌데’, ‘혹시 부모님께 누가 될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친한 언니가 “이제는 네 삶도 지켜야 한다”며 상담을 권유했고, 결국 용기를 내 상담을 받았습니다. 처음 상담실 문을 열 때의 심정은 두려움과 동시에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었습니다.
개인회생 진행 과정
상담부터 법원 인가 결정이 나기까지 약 6개월이 걸렸습니다. 법원에 제출한 변제계획안은 매달 약 35만 원씩 3년 동안 갚는 조건이었습니다. 원래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7천 8백만 원이었는데, 조정 과정을 거치며 상당 부분이 탕감되고, 제가 실현 가능한 범위에서 상환할 수 있도록 조율되었습니다.
물론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서류 준비가 복잡했고, 법원에 출석해 직접 설명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성실히 살아왔던 기록들이 인정받아 인가가 났을 때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구나”라는 안도감이 찾아왔습니다.
인가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마음의 짐이 덜어졌다는 것입니다. 빚 독촉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고, 정해진 금액만 꾸준히 갚으면 된다는 확실한 계획이 생기니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편의점 운영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었고, 부모님을 모시며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의 변화와 희망
지금은 개인회생 변제를 성실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달 35만 원이 적지 않은 돈이지만, 예전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채무가 아니라 ‘갚으면 끝나는 빚’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견딜 수 있습니다. 소비 습관도 바뀌어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고, 작은 기쁨에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다시 무리한 빚을 지지 않고, 부모님께 든든한 딸이자 제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같은 처지에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제도를 적극적으로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부끄럽고 두려웠지만, 결국 개인회생은 제 삶을 지켜준 구명줄이었습니다.
이제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힘든 시간을 지나온 만큼, 앞으로는 더 단단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